8월에 새 직장을 얻어 입사한 이후로 영화를 볼 시간이 확 줄었다. 아직 엄청 바쁘거나 하진 않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없는지… 극장은 갈 시간이 없는 것도 있고 상황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집에서 따로 영화를 찾아 볼 시간조차 많지 않다. 내가 보고싶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오늘은! 예전부터 무비브릿지 업로드 감으로 찍어 둔 영화를 하나 가지고 왔다. 그래봐야 세 달 전에 극장에서 본 거지만. 아무튼,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이하 너파도)이다. 2020년에 국내에서 개봉을 했고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걸로 안다. 내가 당시에 이 영화를 찾은 계기도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 일본을 좋아하고,(내가 좋아하는 건 언어와 문화이니까 시국 문제로 시비 걸 생각하지 말자.)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별로지만…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너파도’를 본 소감이 어땠냐고? 이걸 7월에 봤으니까 2020년의 절반 가량 지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올해 본 수많은 영화 중 Top 10안에 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건 취향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만족하며 극장을 나왔는데, 내용이 지루하다든지 뻔하다든지 하는 이유로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너파도’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다. 주인공인 ‘히나코’는 서핑을 취미로 즐기는 소녀로,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해서 진로로 고민하고 있다. 또 다른 인물인 ‘미나토’는 소방관으로, ‘히나코’의 집에 화재가 났을 때 그녀를 구해준 걸 계기로 가까워진다. 둘은 그렇게 연애를 하게 되고(아니;;),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날 ‘미나토’는 홀로 서핑을 즐기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히나코’는 혼자 남게 된다. 혼자 남게 된 그녀가 ‘미나토’와 함께 즐겨 불렀던 노래를 부르자, 갑자기 물 속에서 그의 모습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혹시 이후에 이 영화를 볼 계획이라면 여기까지만 알고 영화를 보면 굉장히 재밌게 볼 수 있다. 존경하는 유튜버 '거의없다'처럼 나도 좋은 영화는 절대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뭔가 ‘너의이름은’ 같이 좋은 ost를 듣거나 예쁜 그림체를 볼 생각으로 갔지만, 생각도 못한 전개에 넋이 나가서 굉장히 몰입해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 그림체는 솔직히 ‘너의이름은’과 비빌 수는 없다. 짱구 극장판과 거의 유사한 그림체를 가지고 있다. 짱구 극장판 시리즈가 그림체가 좋지 않다고 해서 명작이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영화도 굉장히 좋은 시나리오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장점은 총 네 가지다. 첫째, 소재가 신선하다. 이건 다시 말하면 시나리오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고 흔해 빠진 소재인 연인들의 헤어지고 나서 느끼는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몰입 시키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헤어지는 이유가 사별이라는 점과 그 전까지 둘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 것에서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기가 굉장히 쉬웠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데, 여기에 연인만이 죽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신선한 소재가 흥미로웠다. 둘을 연결해주는 것도 둘만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노래라는 것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러닝타임내내 한 노래만 주구장창 나온 것이 지루한 사람도 있던 모양이지만.
둘째,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의미 있다. 너무 당연하지만, 이 영화의 상업적인 요소, 그러니까 주인공의 러브스토리,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분위기 등을 빼고 공익적인 요소만 남겨보면 그게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메시지가 간결하며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자연스럽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본 사람이면 다 알 걸? 소방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위험하게 불꽃놀이 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 안전수칙에 관한 것들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준 점에서 작년에 개봉한 ‘엑시트’와도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이건 애니메이션이라 픽션의 요소가 더 강하다는 것과, ‘저렇게 하면 안되겠구나’는 잘 보여주는데 비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한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있다. (땃따따-따따-따-땃따따 같은 거.)
셋째, 서사의 진행이 매끄럽다. 첫번째 내용의 연장선이다. 신선한 소재 뿐만 아니라, 그걸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다. 감독의 센스가 엿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서로 달달하게 사랑했다, 라는 한 줄의 내용을 길게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굉장히 짧게 보여준 후 바로 ‘미나토’를 죽인다. 이는 관객의 입장에서 충격이기도 하고 그만큼 갑작스럽게 맞은 죽음으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히나코’라는 인물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이 짧은 만큼 임팩트가 없지도 않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이 영화의 OST, Brand New Story는 정규 음원을 재생한 것이 아니다. 두 캐릭터를 연기한 성우분들이 직접, 그것도 진짜 행복하게 들리는 웃음소리를 섞어가며 부른 것이다. 이 노래를 듣는 동안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인물에 몰입해서 진짜 행복한 연애를 했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서사의 진행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감독이 고민한 흔적이 너무나도 잘 보였고, 그게 잘 작용해서 인물들에게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넷째, 노래가 좋다. 앞서 이야기 한 노래인, ‘Brand New Story’이다. 다른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그러니까 ‘너의 이름은’과 같은 것들은 자본을 투자해서 엄청난 그림체와 많은 양의 퀄리티 있는 노래들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딱 봐도 자본 없이 만들어 진 게 티가 난다. 그러나 명작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본과 명작은 필요충분관계가 아니다(자본을 들여서 명작을 탄생하는 경우는 있어도, 명작이라고 꼭 자본이 동반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도 그렇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명작까지는 아니어도 준 명작까지는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에는 단 하나의 노래만 나온다. 그것이 이 Brand New Story. 어떤 사람은 러닝타임 내내 이 노래만 나온다고 지루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몰입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 노래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가사가 엄청 잘 맞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관심 있는 사람은 검색해서 찾아보자.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노래에 빠져서 한동안 이 노래만 듣고 다녔다.
꽤나 친한 사람들에게 모두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만큼 재미있게 본 영화이기도 하고, 울림이 많은 영화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했어? 하는 것들. 무비 브릿지를 시작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후의 나는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볼 때 그 자체에 빠져서 즐기는 게 줄었다. 모든 장면에서, 이 부분은 어떤 의미일까, 이 것은 어떤 장치일까, 하는 생각만 늘었다. 그런 때에 영화의 등장 인물에 몰입해서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어 즐기게 해 준 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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